분등, 서해바다에 접한 전남 영광의 작은 어촌 마을,
생전 들어본 적 없는 지명임에 당연하다. 나는 이 이름에 홀린듯 꽃혀버렸다.
달랑 두 글자지만 일상에선 분명 흔한데 동네이름 지명에는
잘 쓰이지 않는 단어들로 굳이 조합한듯한 낯섬에 끌렸달까.
분등이라니, 그 낯선 단어에서 삭막함과 허허로움, 적막한 풍경이
베어들어 있을거라 멋대로 예판하고 무턱대고 가보기로 한다.
아마도 동네이름이 산데피오르였다 해도 분등만큼 꽃히진 않았을거다.
나는 이정표의 화살표만 보고 갈 뿐, 네비속 내 차는 길도 없는 공허한 빈 화면을 달린다.
지도에도 없는 길을 막막한 심경으로 달릴 때의 불안감이 엄습한다.
아 이거 차가 돌아나올 길은 있나?
갑자기 비포장이 나오거나 자전거 하나 지나갈 길로 변하면?
길 안으로 잔뜩 뻗어나온 수풀과 나무들이 평소 차량 통행이
거의 없었음을 말해준다. 비포장 흙길이라야 구색이 맞을듯한데
흰색 아스팔트로 닦여진 좁은길은 분명 고마운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없어야 할 게 있다 싶은 생뚱맞은 느낌이 또한 불안감을 가중시켜
심장 요동.
이윽고 마주한 서해바다.
허허롭고 공허함? 그렇기로 따지면야 동해만한 곳이 있을까?
가로로 선분 하나 그어놓고 위는 하늘 아래는 바다, 끝.
이거만큼 더 공허하고 외로운 풍경은 없을테지.
서해는, 그런 물리적 공허함으로 따지면 차라리 아기자기하다.
밀물과 썰물의 격차에 따라 드러나는 드넓은 갯벌과 거기 설치된
띄엄띄엄 삶의 흔적들, 간혹 시야를 틀면 멀리 섬도 보이기도 하니
동해완 비교도 안되게 구성요소가 많다.
하지만 사람의 정서나 기분이라는 건
그렇게 물리적 차이로 인한 크기만큼을 그대로 느끼진 않는다.
앞으론 수평선 뒤론 지평선의 터무니없이 넓은 빈 공간속에
점 하나가 되버린 내가 느끼는 무기력해진 느낌과 폭염에 나는 금방 지쳤다.
그나마 그물 손질하러 나온 분 하나, 해변 나무그늘에서 쉬고 있는 동네 주민 두엇.
그들마저 없었다면 그 적막함에 내가 아마 못버텼을듯.
빠르게 간조를 향해서 물이 빠져 나간다.
끝없이 방대한 늪같은 갯벌이 서서히 드러나는데
평소 보아오던 남해의 갯벌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 크기로
수평선을 지평선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광경이 주는 묵직한 이미지에 넋놓고 한참 보며
저기 휩쓸리면 어찌 될까 하는 상상을 짧게 하며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여기 풍경엔 매력이 있다.
크고 단순한 선과 면속에 포인트처럼 반짝이는 그물의 컬러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며 참 아름답다.
아주 일부만 나왔지만 저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주는 위압감은 또한
여기 풍경의 중요한 요소이다. 망망대해 수평선을 바라보고 선 내 등뒤엔
저 발전기들이 넓은 들판에 가득 서있다.
바다를 보다 고개 돌려 등뒤를 보면 거인처럼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들이 있는 것이다.
내 앞으로 뒤로, 자연과 인공 구조물이 웅장한 위용으로 대치해있고
그 사이 끼어 왜소한 점 하나로 잠시 머물다 떠난다.
일반적 의미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는 거리가 있고
일상 풍경의 친근함도 없고
그렇다고 이국적인 맛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또 들르고 싶다.
강렬한 기억을 남긴 그 풍경들을 또 보고 담고 걷고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