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후 집에만 계셨던 아버지는
가족들의 나들이 권유나 외식 권유등에
일절 응하지 않으셨다.
워낙 외출을 싫어했고 취미도 친구도 없었던
아버지는 긴 시간 집에서 티비를 벗삼아 지내며
주말이면 로또 맞추는 낙으로 무료하게 사셨다.
바람이나 쇠러 가자고 나들이 권유라도 할라치면
아버지는 늘 단 두 가지 답변만 하셨는데
이 답변들은 전가의 보도와 같았다.
나들이 목적지가 아는 곳이라면
'내 옛날에 거기 가봤다, 너거들끼리 가라'
모르는 곳이라면
'거 무슨 볼 게 있다고, 너거들끼리 가라'
그 어떤 권유도 물리치는 그야말로 무적의 2단 논리.
지난 겨울, 나는 천하제일 집돌이 아버지를
이번엔 반드시 꼬드겨
외출을 함께 하리라 생각을 하고서
아버지가 구미가 당길만한 요소라 생각되는
주제를 잔뜩 집어 넣은 설득용 대본을 구상하고
작심하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가족들은 헛수고라며 웃었지만
나는 자신이 있었고 놀랍게도! 성공했다.
2월 추운 겨울날이었고
아내와 자식 손자까지 함께 한 나들이는
아버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바다 구경도 하고 외식도 하고 그동안 변한
시내구경도 하며 보낸 하루.
젊은 시절 많이 다니셨다는 마산 어시장의
변한 모습에 어리둥절 하셨고
어린 시절 자주 놀았다는 광암해수욕장의
현재 모습에 또한 격세지감을 느끼셨으리라.
아버지가 아흔을 훌쩍 넘기셨으니
80년 만의 방문이라며 가족 모두가 웃었다.
그것이 마지막 외출이었다.
5월이 끝나가던 주말 아침,
아버지가 집에서 기력을 잃고 쓰러지셨단
전화를 받았고 허겁지겁 출발하던 나는
일단 119를 불러라 해두고 조바심을 치며 달려갔다.
내가 도착하고 연이어 도착한 구급대원들.
우루루 달려와 순식간에 장비들을 설치해 아버지 몸에
연결하고선 다급하고 큰 소리로 물어온다.
적극적 조치 하실 겁니까?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면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 당연히 구호조치를 해야지? 왜 묻는 거지?
했을 테지만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얼마전에 들었다.
친구의 아버님이 병상에서 겪은 상황과 닮았던 것이다.
환자가 이미 고령이고 오랜 병석에 그간 가족들도 할 만큼 했다면
잠시 실낱같은 생명 연장 두어 시간, 굳이 또 하겠느냐?
환자 본인에게도 고통의 연장일 수 있다......뭐 그런 의미.
의미를 금방 깨달았기에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히 합니다. 빨리 해주십시오'
한바탕 소란후 결국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됐고
12시간 남짓, 기계에 의존한 채 생명이 유지되었고
그 날 밤 자정을 넘기자마자 아버진 돌아가셨다.
가능성이 없단 병원측 얘기들 듣고 맘의 준비를 했지만
실제로 돌아가시고 사망 선고를 듣는 순간에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비춰진 사슴처럼
동작을 멈추고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지만
봄이 지나며 눈에 띄게 기력이 떨어진 아버지를 보며
가족들은 혹시 어쩌면....하는 마음의 준비를 사실 조금은 하고들 있었다.
그렇게 내가 상주인 장례를 치르게 됐고
경황없이 일정이 흘러갔고
번쩍 하고 눈 뜨니 모든 게 마무리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살가운 사이였다면 내 상실감은 무척 컸을 것이다.
그 연령대 우리들 아버지가 대부분 그랬듯
대화없고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인 전형적 아버지상.
내 맘에서 우러나는 아프고 찢어지듯 하는 슬픔은 없었다.
솔직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현실 자체가
주는 충격에 반사적 슬픔과 당혹이 몰려와 그에 맞춰 행동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커지는 빈자리가 있고 잊혀지는 빈자리가 있다.
살면서 했던 모든 사랑의 이별은,
처음엔 숨도 쉬기 힘들만큼 고통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는 차츰 옅어졌다.
아버지의 떠남은 그와 반대로
정작 당시엔 기계적인 반사작용으로 슬펐다면
그 이후엔 가슴이 시키는 뒤늦은 슬픔에
이따금 울컥울컥 하곤 했었다.
자리가 커지네...하는 생각으로
아버지의 방에 앉으면 체취가 느껴진다.
현실의 체취일 수도 있고 내 상상이 만들어 낸 체취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시간은 흐른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단듯이 돌아가고 남은 가족들도 일상을 살아간다.
모든 자식들은 부모의 나이를 향해 나아간다.
어느 시점에 부모의 시간이 멎으면
간혹은 추월도 하고 그에 못 미쳐 중단되기도 할 테지.
추월은 자신도 없거니와 원하지도 않지만
아버지가 평생 그러셨듯, 주어진 일상은 묵묵히 살아야지.
아직은 내가 할 일도 많고 하고픈 것들도 있다.
이제 조금은 더 아버지를 내려놓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