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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국화차 후기

 

 

 

 

 

이런저런 이유로 녹차를 마실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비싼 중국산 명품부터 인스턴트 티백까지 다양하게 마셔봤지만

나랑은 안 맞다는 사실만 누차 확인되었다.

 

도저히 풍미란 걸 느낄 수가 없었다.

길거리 낙엽 주워다가 우려내도 이런 맛 아닐까?

(낙엽 우려낸 걸 먹어보지야  않았다만 상상은 딱 되니까)

 

국화차를 선물 받았는데

내 지레짐작은 녹차과겠거니 했었다.

그래도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시음을 하기로 한다.

우연찮게도 저 차 전용 잔은 내가 십여 년을 들고 있다가

얼마전에 문득, 쓰지도 않는 살림들 버리자 싶어

싸그리 정리를 했는데 혼잡한 통에 깜빡 잊히는 통에

요행히 살아남은 찻잔인데

이러라고 살아남았나 보구만 싶었다.

 

그래서 하여튼 맛을 보니,

숱하게 접해서 너무도 익숙한 국화향을

뇌가 먼저 인식하고는 상상을 하고

상상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그 향이 코를 통해 들어와선

그대로 혀에 얹히고 목으로 넘어가는 경험을 한다.

인지→후각→ 미각의 감각 이동 절차가 부드럽게 연결되고

중간 과정에서 변화도 유실도 없다.

 

꽃향기를 먹는 느낌이란 게 이런 거군.

근데 이거 의외로 맛이 괜찮은데?

녹차의 텁텁함과는 다른 산뜻함이 있잖아?

 

저녁에 집에 와 청소하고 샤워하고

환경과 몸을 정돈을 한 다음 느긋하게 즐기는

국화차 한 잔의 정갈함은 색다른 풍미였다.

(커피는 귀찮은 선행 절차따위 신경 안 쓰지만

국화차는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그리 한다)

 

여기까지면 딱 좋다만 내 절차의 마지막은

다 마시면 담배 피러 가야 한다.

커피류는 종류를 막론하고 다 마신 후의 담배 한 대와

궁합이 좋은데 국화차 또한 그러하다.

이것까지도 맘에 드는군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