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목길을 틈틈이 찾아 들러본다.
낡고 누추한 건물과 좁고 정돈되지 않은 길.
지난 시대의 모습을 간직한 채 현대적 도시의 모습과는
조금 동떨어진 듯한 이런 공간속에서
자주 느끼는 한 가지 사실은
그 골목들이 생각보다 참 깨끗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이런 골목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을 무렵,
대충 버려져 뒹구는 쓰레기와 코를 자극하는 시큼한 냄새가
혼재해 있지 않을까 막연히 예상했었다.
물론 그런 곳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있다면 그건 재개발 직전으로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사해서
철거 직전에 들어갔을 때나 그렇지
보통의 경우에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일상의 쓰레기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거리,
집앞에 놓여져서 정성스레 관리되는 작은 화분들,
텃밭과 집이 뒤섞인 공간임에도 흙이 흘려져 있지 않은 골목 바닥,
정기적으로 물청소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는 흔적등은
주민들이 청소와 미화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외관상 보기에 누추하고 낡았다고 해서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고 대충 살진 않는다는 얘긴데
이는 사실, 아주 당연한건데
막연하게 이상한 선입관을 갖고 접근했던
내가 참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내가 용기가 없어 먼저 다가서고 인사를 건네는 등의
적극적 커뮤니케이션은 못하지만
이따금은 우호적인 일상의 인삿말과
이런 동네에 뭐 찍을게 있냐는
순수한 호기심이 깃든 질문을 받기도 한다.
커피를 한 잔 하고 가라거나
평상에 앉아 쉬었다 가라는 등의 친절도 있었으며
드물게는, 텃밭에서 가꾼 상추와 양파등을 손에 쥐어주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그 곳의 삶은 물질적 풍족함과는 거리가 멀며 궁색한 게 사실이다.
대문틈으로 보이는 폐지다발과 리어카,
보일러실 같은 작은 문이 실은 출입문이라
신발을 골목 가장자리에 벗어둬야 하는 상황,
수명을 다 하고 나와 앉은 하얀 연탄들은
그 곳의 경제적 현실을 짐작하게 해주는 장면들이다.
장애인이나 노년층의 비율이 타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많고
대문가에 걸린 '국가 유공자의 집'이란 팻말 또한
심심찮게 볼 수가 있어서 마음이 편치 않을 때도 많았다.
내 여가를 즐기며 내 마음의 정서적 만족을 위한
취미활동의 일환이니 카메라 들고 나서는 길은 즐거워야 하겠지만
자연속으로가 아닌, 골목으로 들어설 때는
그래서,
약간 무거운 마음과 나름 진지한 자세로 임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마음속에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 같은 것이 생기게 되었는데,
낡은 골목에서의 삶이라든가
인간적 따스함이 남아있다 라는 등의
다소 사회학스러운 주제나 시각으로 접근하는 걸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솔직하자면
능력밖의 일에 대한 포기와 성격상의 한계로 인한
적당한 타협이 뭉쳐진 어쩔 수 없는 가이드라인 이기도 하다.
이래나 저래나
결국 골목은 주택가 이므로
사람과 삶이라는 항목이 참 중요한 주제가 되어야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스쳐 지나가는 방문객일 뿐인 내가
타인의 삶을 정확히 이해하기도 힘들거니와
잠깐의 산보를 통한 느낌으로
공감의 감정이나 정서적 교감을 억지로 내 속에 심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적극적인 행동가이거나 넉살이라도 좋으면야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어 더 생생한 생활의 현장을
담을 수 있을 테지만 전혀 그렇지가 못하니
이상과 현실의 매칭은 썩 좋지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시선과 관심은 여전히 골목을 향해 있으니
결국 내가 가진 한계나 능력으로는
단순하고 피상적인 모습의(콕 찍어 말해 휑~ 한)골목 사진만 찍을 수 밖에.
이런 자세로 골목을 대하다 보니
늘 마음 한 구석에는 미진함이 있었고
이따금은 지향점과 방향성을 잃고
하기 싫은 숙제하듯 심드렁하게 마주하기도 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내 마음을 달래줄 약을 하나 개발해서
스스로에게 처방을 했는데, 그건 바로
순수한 기록자로서의 역할도 나쁘지 않다 라는 의미 부여였다.
이건 꽤나 약효가 있어서 새로운 추진동력으로써 현재 잘 작동중이다.
2014년 모월 모일에 무슨무슨동의 모습이 이러했고,
이 곳이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타고 넘어가는지를
시차를 두고 기록하는 것.
10년 정도의 시간동안 지역의 골목을 다니다 보니
여러 번 가게 되는 곳도 있게 마련인데
사라지거나 완전히 탈바꿈을 한 동네가 지금껏 꽤 많았으니
내 컴퓨터속에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기록이 제법 쌓여있는 셈이다.
조금 거창하게 보자면
지역 문화사에서는 이런건 꽤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음... 터놓고 말해서
자료로써의 가치 어쩌고 하는건 낯간지러운 얘기고
이도 저도 다 떠나서
지금은 사라지거나 변해버린
어느 동네의 예전 모습이
어쩌면 지구상에서 오로지 내 사진속에서만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는 사실은 일면 근사하기도 한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