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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책갈피 하나

 
 
 
 
책갈피는 필요하다.
펼쳐 들고 한 번에 다 읽어버리는 경우는 없으니까.

책장을 접어 두거나 책 겉면의 띠지를 끼운다?
두 경우 다 정말 싫어하는 행위라
나는 책갈피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쁘고 세련된 책갈피도 좋지만
보통은 임시변통으로 내가 직접 만들어 쓴다.

너무 얇지 않은 종이 하나 적당한 사이즈로 오리고
노란 박스테이프로 두어 번 감아주면
그 투박함도 나쁘지 않고 적당히 낭창거리니
기능적으로도 훌륭하고,
잃어버려도 하나도 아깝지 않으니 또한 좋아서
내 책들 여기저기에 중구난방 꽂혀있다.


책을 하나 선물 받았다.
새 책이 아니라 그 분이 보던 책.
몇 장 펼쳐 읽는데 낙엽 하나 나온다.
책갈피인가, 말리기 위해 우연히 끼워둔건가.

책을 건네 받았던 그 날, 차를 마시며
나눴던 이런저런 얘기중에
지금도 이쁜 낙엽이 있으면 주워서 모은다란
얘길 그 분이 했다.
이미 그럴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의
분위기와 글을 고려하면 충분히 그러리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래서 책 사이에서 불쑥 나온 낙엽 하나
놀랍지도 않아서 빙긋 웃음이 났다.
나도 이쁜 낙엽을 보면 주워 가고 싶다란 
생각 한 적 있지만 보통은 실행하지 않는다.
주워 가봐야 며칠후엔 어디 뒀는지도 잊어 먹거나
책상위에서 한동안 구르다 볼품없이 말라서는
결국 버려야하는, 
익히 예상되는 수순을 굳이 하고 싶진 않아서
한 번 쓰윽 보고 마는 거지.

이 낙엽이 책갈피든 아니든
이걸 책 사이에 끼워 둔다란 그 사실이
나를 참 기분 좋게, 유쾌하게 했다.
이런 옛스런 취향을 아직 갖고 있다니
쬐금 낭만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그 분은 나보다 연배도 위인
아저씨인 걸.

이쁜 걸 이쁘다 하고
좋은 걸 좋다 라고 말하면
철없다 사람이 가볍다 소릴 들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나잇값하는 어른축에 들기 위해선
그저 점잖고 어른스럽고 무게잡으며
감정 표현을 아껴야만 뒷말을 안 듣는 시대인 것이다.
나 또한 강요받는 그 덕목에 휘둘리며 살고.
 
차 한 잔 하며 들었던 그 분의 따스한 이야기와
이 낙엽이 주는 상징은 매칭이 맞았기에
기분이 무척 유쾌해졌고 좋아졌다.
 
창 밖 겨울밤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