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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영화 이야기 2

 

 

 

2본 동시 상영관이란 게 있던 시절,
내가 사는 도시의 전성기 땐 대여섯 군데가 있었다.
고2, 신분증 검사따위 하지도 않았기에
참 열심히도 들락거렸다.
그나마 최신 설비인 새로 생긴 극장은 1000원.
낡고 오래된 극장은 500원.

극장에서 알아서 선정해주는 영화 두 편을 보게 된다.
국산 영화 하나 외국 영화 하나, 보통 이렇게 짝지어 상영을 했다.
국내산을 그 땐 방화라 불렀는데 이젠 추억의 단어.
(근원이 일본식 한자어라 사장되었을거라 여겨짐)

하여튼,
외국 영화는 그나마 약간 지난 시점의 액션 영화, 공포물등이 대다수였고 
한국 영화는 그 보다 훨씬 이전 것들, 거의 무성영화 시대급의 고전이나
조악하기 그지없는 퀄리티의 신파극이나 무협물.

 

세기말 감성의 홍콩 액션물,  
국적 불명의 b급 공포영화, 
운 좋으면 개봉 조금 지난 블록버스터급 화제작,
또 이따금은 국내 화제작 에로물. 


새로 생긴 극장은 그래도 제법 깨끗했지만
오래 된 극장의 관리 상태와 내부 수준의 극악함이란....

마산극장,
도시에서 아마도 가장 역사가 오랜 곳중 하나였던 곳이
새 극장들에 밀려 개봉관에서 재개봉관으로 변했고
또 시간이 흘러서는 2본 동시관으로 전락을 했다.

휴게실 구석 한 켠에 키만한 높이에 
나무 판때기  하나 가로 지르고 거기 얹어 둔 티비 수상기 하나.
'수상기'라고 굳이 붙이지 않으면 안 될 외양의 작은 티비.

대기중인 관객들을 위해 이런 저런 비디오를 틀어 주는데
꽤나 자주 포르노와 다를 바 없는 영상을 그냥 틀어 준다.
세상에...
참 관대했던 시절이었다.

접이식 철제 의자, 울퉁붙퉁 표면도 고르지 않은 시멘트 바닥,
옆 통로 화장실 지린내 은은히 풍겨 오고
누가 봐도 동네 건달인 형들과 아저씨들의 담배 연기,

파인애플 깡통 따서 만든 재떨이, 
그 와중에 드문드문 누가 봐도 고삐리들 한 둘 섞여 있고
그중에 나도 두근두근한 심경으로 있었다. 
가끔은 정작 상영 영화보다 이쪽이 더 흥미로운 경우가 
꽤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세기말 감성의 홍콩 액션 멜로물?
이제 와 생각하면 그 극장이 아포칼립스의 세기말 감성이었다.

주윤발을 장국영을 거기서 만났고 잭 니콜슨, 로버트 드니로,
캐서린 터너, 킴 베이싱어 (그 시절엔 킴 베신저로 표기하던) 또한.
뭔가 분출이 필요했던 십대의 갈망을 잠시나마 해소시켜 주던 그 곳.

오늘 라켈 웰치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가 벽에 뚫은 구멍을 가리던 포스터중
제일 마지막에 쓰던 포스터에 있던 그녀.
한 때 섹스 심벌 (이 단어도 이제 사라진 단어인듯)로 
잘 나가던 이의 죽음 소식에 이런저런 기억과 추억이
파도처럼 끝없이 이어지길래 시절 추억 하나 주절거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