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 봄의 기억

오거스트 8월 2017. 11. 27. 01:13









































































dj가 신청곡을 틀어주는 음악다방을 처음 가본 건

신입생이던 스무살 때였고 봄이었다  3월.

입학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무렵.


데이트라든가 미팅같은 로맨틱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자리였다.

모임의 목적은 무척이나 사무적이고 진지했었는데

총학선거와 각 단대별 선거 기간 이었던지라

문과대 학회장에 출마한 선배의 선거운동에

대한 지원에 대한 논의를 위한 자리였었다.

말이 논의지 선배들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신입생들은 듣기만 하던 자리.


선배들은 많은 얘기를 해줬다.

선거 운동에서의 역할 배분과 협조, 당부로 시작하더니

어느새 이야기는 이 땅의 질곡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들이 나서서 가열찬 투쟁을 해야 한다 라는 주제로 옮겨가 있었다.


투쟁이라... 그래, 그랬던 시절이었다.

88년은 학생운동의 마지막 정점이었던 해로 기억되니까.

연일 휴강에 집회, 교문앞 전경버스, 청바지 입은 백골단들,

교정엔 최루탄 냄새 가득했던 봄이었다.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청년의 역할에 대한 선배들의 얘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투쟁, 민중, 독재, 타도, 혁명, 해방 등의 단어가 쉴 새 없이 이어 나왔다.


하지만, 밤 11시까지 자율학습하며

사회와 격리되다시피 규제와 타율속에 살다가

이제 막 고삐리를 벗어난 청춘들에겐  참 낯선 단어들.


사뭇 비장한 분위기속에 이야기는 이어졌고

고개는 연신 끄덕거리는 척을 해야 하고 귀는 들려오는

음악에 점점 팔려가고  그것도 잠시,

이윽고 눈이 서서히 감겨 오고...


딱딱한 얘기만 진행되던 중에

한 선배가 차나 마시며 잠시 좀 쉬자고 하며

듣고 싶은 음악 있음 신청하란 얘길 하고선

자기도 메모지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i can't tell you why를 적었는데

깊이 생각한 것도 아니고 그 순간 제일 먼저 떠올랐기 때문에.


그리고 각자가 신청한 음악들이 연이어 나오는 동안

모두들 별 말없이 꽤나 긴 시간 음악만을 듣고 있었다.

아는 곡도 있고 모르는 곡도 있었고.

신청곡 쓰자 제안했던 선배의 희망곡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흐르고…

dj는 그 곡을 틀며 무척이나 즐거워하며 유쾌한 멘트를 했었다.


구식의 난로가 켜진 실내는 따스했다

2층이었던 카페의 창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시야를 삼켰지만

눈을 가늘게 뜨면 하나 둘 움트는 가로수 나뭇잎들을 볼 수 있었다.

초록색 잎들 하나 둘 셋 넷.

나른했다.  내 생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봄이란 계절을 인식한 시간.


그 이후, 음악다방을 가 볼 기회가 몇 차례 더 있었는데

음악을 신청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1번 곡은 그 곡이었다.

웬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추억에 대한 나만의 보존 방법이었을지도.

.

.

.

동네에 음악 카페가 생긴 걸 봤다.

장식장 가득한  LP를 창너머 보고선 가슴이 뭉클.

반가웠지만 휴일에 시간 내어 들러 보면 항상 문은 닫혀 있었다.

장사를 안 하는 건가?

궁금증은 오늘 풀렸다.

카페라 적혀 있었지만 주점이었기 때문에 오픈 시간이 저녁이었던 것.

덕분에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주점을 혼자 가봤다.

맥주를 시켜 두고 앉아 신청곡을 끄적거려 본다.

얼마만인가… 그리고 또한 LP로 들어 본다는 설렘.

사실 LP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집에서 컴퓨터 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한 아쉬움.

꽤나 비싼 블루투스 스피커를 연결해 봤지만 그 미진함이란.

그것도 이웃에 피해 끼칠까봐 볼륨 신경 써가며 들어야 하는 갈증.


그런 것들이 일시에 해소되었던 시간들.

가슴에도 울림이 있었고 홀이었으니 물리적으로도 소리는 울렸고.

이런 게 카타르시스리라.


맘 같아선 주말마다 들르고 싶다만 너무 사치스런 거란

생각을 하던 차에  커피도 조만간 메뉴에 넣을 거라는 사장님 얘기.

아 그래 그 정도면 사치는 아니겠지.












Eagles - I Can't Tell You Why